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지 형제 (문단 편집) == 비판 == [[쥐돌이(검정 고무신)|쥐돌이]], [[고민호]], [[임시담임 선생님]]과 함께 '''검정 고무신'''하면 비호감으로 악명 높은 캐릭터들이다. 작중 시점에서는 먹을 게 별로 없는 시절이었기에 나눔과 양보가 미덕이었다. 치사하게 먹을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 기철은 거지 형제에 의해 라면을 못 먹고, 거지 할아버지에게 아낌없이 양보한 기영은 라면 한 트럭으로 보상받는다는 내려오는 [[권선징악]] 스토리다. 제작진은 이러한 교훈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층'''이 [[최빈국|부유층이건 빈곤층이건 다 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보낸 20세기 1940~1970년대 초반 어린이들]]이 아니라 [[선진국|부유층이건 빈곤층이건 다 같이 불어터지게 부유한 시대를 보내는 21세기 1970년대 중후반~2000년대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배고픔을 겪지 않은 시청 세대들로서는 개인의 소중한 물품을 훔친 장면이 부각되어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 많았다. 이 때문에 거지 형제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 웬만한 전쟁 고아들도 당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도둑놈이라고 배척 받는 것을 떠오르면, 어찌보면 거지 형제가 굳이 라면을 훔쳐먹으려고 하지 않아도 기철이한테 미움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며 몇몇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봐도 21세기의 아이들과 비슷한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또한 거지 형제도 기철이와 똑같이 욕심을 부려 라면을 훔쳐먹었는데도 이쪽은 '''벌을 받기는커녕''' 기영이가 라면 잔치를 열자 '''염치없이 찾아와 잘만 먹었다.''' 최소한 이 장면은 넣지 말았어야 했다. 기철이도 라면을 혼자 먹으려고 욕심부리긴 했지만[* 무엇보다 기영이랑 합쳐서 2인분을 끓여도 도승이,성철이랑 같이있었으니, 기철이 입장에선 5원어치를 손해보는것이다. 애초에 기영이 일행의 10원은 3명의 공동 노동(재롱)으로 얻은것이고, 기철이의 10원은 [[내돈내산|기철이 혼자의 노동(설득)으로 얻어낸 온전한 본인의 것이니 욕심으로 칠 수도 없다.]] --자기 노동으로 얻은 재화를 남과 나누지 않는 게 욕심이라고 가르치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작품-- 거기에 이어지는 기영이의 행동은 공동소유의 재화를 자기 혼자의 판단으로 처분해버리는 횡령이다. ] 아무튼 정당하게 손에 넣은 돈을 가지고 제대로 산 것이었고, 거지 형제 역시 욕심부린 건 매한가지며 무엇보다 [[특수절도죄|남의 라면을 강제로 훔쳐먹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그래서 차라리 다른 사람에 의해 라면을 뺏기는 것이 아닌, 바닥에 엎어버리거나, 물에 빠뜨리는 등 외부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훨씬 권선징악의 요소를 드러내기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참고로 검정 고무신의 배경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으로써, '''휴전이 이뤄진 지 20여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광복이 1945년, 6.25 전쟁이 1953년에 휴전이 이뤄졌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치르기 위해 솥단지까지 훑어 갔으며 그나마 광복 후에 그나마 남아있었던 것도 5년 후 6.25 전쟁으로 모조리 박살나버렸고 전쟁으로 부모, 친척을 잃은 고아들과 분단과 전쟁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도 많았다.[* 본 만화보다 10년 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안녕 자두야]]의 주인공의 친가 친척들 또한 실향민이다. 주인공의 고모는 생사도 알 수 없으며 주인공 할아버지 또한 피난가다 가족들과 헤어져 사망했다.] [[한강의 기적|비약적인 경제 성장]]의 영향으로, 지금은 경제대국이 된 현재의 한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확 들 정도로 그 때의 한국의 모습은 다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사실 한국의 생활 수준이 나아진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1968년까지 남한의 국민소득은 북한보다 낮았으며, 1979년에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1700 달러였다. 그러다가 3저 호황의 바람을 타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한국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었다. 당장 본 만화 캐릭터 다혜만 봐도 형편이 어려워 육성회비를 못내거나 도시락을 못싸와 기영이와 나눠 먹는 장면이 나왔고 도승이 또한 점심으로 밥을 먹지 못하고 고구마 먹는다고 밥을 먹는 기영이를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거지 형제는 염치나 양심보다는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으니 제작진이 당시 전쟁으로 인해 암울한 사회의 단면을 슬쩍 보여줬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실 [[http://bbs.ruliweb.com/family/211/board/300075/read/25205539|거지 형제가 제일 눈에 띄어서 까이는 거지, 해당 에피소드 전체가 총체적 난국이었다.]] 요약하자면 기철이가 욕심으로 벌을 받았다는 권선징악의 모순점, 기영이와 노인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적에 대한 비판 등 여러 문제가 있다. 그 중 거지 형제 문제는 그 비판점들 중 정점에 해당하는 것. 여기에 더불어 시즌 1의 '이상한 축구화' 편에서 기영이가 라면을 먹은 적이 있어서 설정오류로 비판하는 의견도 많다. 다만, 검정고무신은 본래 옴니버스적 성격이 강한 애니메이션[* 그나마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은 검술 에피소드 등이 전부다. 일상 에피소드는 확실히 [[옴니버스]]이며, 원작 순서를 무시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대가 꼬여있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일례로 똥퍼네 가족은 시즌 1 1화부터 기영이네에 세들어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에피소드 별로 똥퍼네가 들어오기 전의 시점을 다루는 에피소드도 많으며 처음으로 기영이네 집에 들어오는 에피소드가 시즌 3의 마지막화이다. 한마디로 옴니버스는 만화의 에피소드가 일정하게 지나가는 형식이 아니라 순서가 뒤죽박죽이거나 아예 각 에피소드 마다 평행세계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간 절차가 엉망진창이라도 상관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형식이다. 따라서 해당 에피소드보다 이전 시간대라 하면 설명이 되며[* 당장 이번 에피소드에서 기영이가 처음으로 라면의 존재를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꼬부랑 트위스트 에피소드 후반부에서 라면먹는 장면이 포착된 성철이가 축구화 에피소드에선 라면을 얻어먹는다는 기영이를 보고 '''"넌 좋겠다! 난 언제 라면 먹어보나?"'''라는 대사를 쳤기 때문에 역순으로 뒤집는다해도 결국 [[악순환|또 다른 설정오류]]가 생긴다.], 기철이의 첫사랑이 수시로 바뀌는 것처럼 설정 자체도 그렇게 신경쓰는 편이 아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해당 에피소드에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않았다는 증거는 될 것이다. 원작에선 그냥 라면에 대한 추억 이야기만 나오며 여기서는 한 아이가 라면을 먹을려고 닭장 속에 있는 달걀을 팔아서 라면을 사 먹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서 혼쭐이 난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인지 [[루리웹]] 등지에선 '기철이 희생양 설'이라는 것도 떠돌았다. 기철이의 욕심 많은 성격이 문제라기보단 애니메이션 제작진들의 과도한 기영이 편애, 그에 비해 안 좋은 기철이의 취급, 구시대적 교훈을 넣으려다 보니 이런 스토리가 나왔다는 의견들이 있다. --흔하디 흔한 [[못된 형과 착한 아우]]라는 클리셰이다.-- 결론적으로 제작진의 과도한 이기영 캐릭터 편애, 그리고 총체적 난국의 스토리텔링 등으로 인해 거지 형제가 희생된 것이다. 적어도 당숙에게 재롱 떨어 용돈을 얻어내는 장면이나 라면 사장 이야기를 없애고 거지 형제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면 얘들이 이렇게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에피소드 불후의 명곡인 라면송도 없었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사실 이 에피소드의 서사 구성에서 '라면 사장'이나 '거지 형제'는 '''인물이 아니라 장치'''로 등장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대충 앞뒤가 맞아들어간다. 이들 역시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로 해석하려 하면 "애들을 상대로 억지를 부려 자기 욕심을 채우는 개념없는 노인" 과 "똑같이 욕심을 부렸는데도 욕심의 대가를 치른 기철이와 달리 이득만 본 거지 형제" 와 같이 독자가 공감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무개념 캐릭터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제작자가 부여한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은 "기영이"와 "기철이" 뿐이고, 제작자의 의도는 <자신의 욕망을 참고 타인을 배려한 기영이는 복을 받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한 기철이는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이었으며, 라면 사장이나 거지 형제는 그런 두 인물에게 갈등과 고난, 그리고 결과로써의 인과응보를 가하기 위해 등장시킨 일종의 장치이지, 이들 자체가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이야기를 견인하는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꼬부랑 트위스트> 편의 문제점 역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기술적인 차원에서 보면 주인공 형제에게 가해지는 고난과 시험이 서사구조 전체에 잘 배치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에 집중되어버린 것이 문제이다. 기영이와 기철이에게 고난과 시험을 가하고, 상이나 벌을 주는 것이 '인물'로 조형되어 버리니 시청자로써는 이들을 장치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등장인물로 해석하고 그 행적에 대해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인물이 되어버린 장치' 자신에게도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욕망과 정당성이 부여되지 못할 경우 시청자들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작품에서 드러나는 주제의식 자체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이 있다. 물론 <너무 이기적으로 욕심부리지 말고 자신보다 힘든 사람과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정도의 주제의식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내용에서 드러나는 주제의식은 단순히 '양보'나 '나눔'을 넘어 '자기희생'과 '자기말살'의 수준에 이른 것이 문제이다. 기철이가 자신의 욕망을 양보하고 남과 나누지 않은 것은 '딱 한 젓가락 맛보고 나머지는 모두 빼앗기는' 형태로 철저하게 징벌받아야 하는 악한 행동으로 단죄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되는 기영이의 '선행'은 단순히 자기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눈다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가 아무리 심한 억지를 부려도 무조건 양보하고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포기해야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근현대 서사가 아니라 고전소설에나 어울릴법한 것이다. 작품 연출을 보면 먼저 아이들이 라면을 먹고 싶어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다음 노인(라면 사장)이 그 아이들에게 라면을 단 한젓가락도 나눠주지 않고 모두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라면은 포기하고 밥을 말아 국물이라도 맛보려는 보다 작은 새로운 욕망을 가지게 되지만, 그 직후 노인은 '국물에 말아먹게 밥을 가져오라'고 하여 그마저도 나눠주지 않고 모두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청자들에게 아이들의 욕망을 하나하나 보여준 뒤 철저히 무너트리고, 처음에 가졌던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가진 보다 작은 욕망까지도 포기하도록 만드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작자들의 의도라고 단정해도 상관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그렇다면 먼저 이 '노인' 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무리 [[장유유서]]를 미덕이자 사회적 규범으로 여기던 시절이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욕심을 부리는 노인은 당연히 빈축을 사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인 만큼 웃어른 역시 어른다운 행동(예를 들어 군것질거리는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나눠주는 행동)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기에 그 시절이었다면 더욱 한심하게 여겨질수도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즉 이 노인의 행태는 어느 시대를 기준으로 보아도 뻔뻔한 비호감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 제시하는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뻔뻔한 억지에도 무조건 참고 양보하며 자신의 욕망을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면 결말에서 '''날벼락 수준으로 우연히'''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된 것이지만 이는 [[전래 동화]]나 [[고전 소설]]에서나 어울릴법한 이야기 구조이지 현대적인 이야기 구조라고 말할수는 없다. 우리가 지금 ≪검정고무신 애니판≫을 보고 있는 것인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를 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러면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어떤 독자나 시청자도 전래 동화나 고전 소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즉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과장된 비유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검정고무신]]은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시절 고무신 신던 60년대 후반의 서울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배경'''을 제시한 작품이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라면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검정고무신의 이러한 억지 교훈/빌런 미화 에피소드도 많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삼척동자' 에피소드에선 꼬맹이 3형제가 동네의 불량배들을 혼내준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들은 합당한 이유 없이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폭행하는 깡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크림빵의 추억' 에피소드도 마지막에 뽑기방 아저씨가 자기 아버지를 속이긴 했지만 기철이가 유달리 꽝만 걸린 거지 적어도 확률 조작은 안해서 딱히 잘못을 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꽝도 아주 극악의 확률인데 쏙쏙 뽑은거다.-- 특히 이런 문제점들은 4기의 '하면 된다!' 에피소드에 정점을 찍는다. '''자세한 내용은 [[임시담임 선생님]] 문서로.''' 결말 자체도 '날벼락' 수준으로 '''우연히'''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 뿐이어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주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